12월 20일 금요기도회 예배문
12월 20일 금요기도회 예배문
사도신경
찬송 - 내가 참 의지하는 예수 (찬86, 새86)
성경본문 마14:22-27
오래 전 상당한 인기를 끌었던 방송인이 돌연 방송 중단을 선언했습니다. 이유는 불안장애 때문이었습니다.
‘나는 불안장애를 앓고 있다. 실력에 비해 너무 잘되다 보니, 밑천이 드러날까 두렵다. 내 능력 밖의 복을 가지려다 잘못될 것 같아 두렵다.’
한 방송에서 한 이야기입니다. 심지어 자신의 방송에서 시청자가 갑자기 돌변하여 자신을 공격할 것만 같은 망상을 여러 번 겪기도 했다고 합니다.
주위를 둘러보면 이런 불안장애로 힘들어하는 분들이 참 많습니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불안장애를 겪는 인구가 약 15%정도, 혹은 그 이상이라 합니다. 수년전 발표이고, 가파르게 오르고 있는 추세이니 사회적 문제로 인식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사회적으로 참 어려운 시기를 지내고 있습니다.
계절로치면 끝나지 않을 겨울 같은 시절을 보내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런 시대에 그리스도인들은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요?
본문 24절
‘배가 이미 육지에서 수 리나 떠나서 바람이 거스르므로 물결로 말미암아 고난을 당하더라’
풍랑을 만나 고생하는 제자들입니다.
가만히 들여다보면 3중의 고통입니다.
첫째 그치지 않는 풍랑입니다. 25절에 보면 밤 사경까지 계속되던 풍랑입니다. 새벽 3~6시 사이를 말합니다.
같은 기사인 요한복음 6장 16절을 보면 ‘저물매 제자들이 바다에 내려가서’
‘저물매’ 초저녁부터 굉장히 힘든 항해를 한 것입니다.
어떤 고생이라도 점차 나아지고, 희망이 보여야 버틸 힘이 생깁니다.
뼛속이 시린 1월을 버틸 수 있는 것은 3월이 되면 찬바람이 더운 공기가 섞여올 것을 기대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3월이 지나고 5월이 지나고 6월이 되어도 찬바람이 계속된다면 그것을 버틸 나무는 없을 것입니다.
이 시대를 겪는 우리와 본문 제자들의 상황. 도대체 언제 이 풍랑이 끝날지 앞이 보이지 않는 상황. 어쩌면 비슷하지 않습니까?
이것이 제자들을 고통으로 몰고 갔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 다음 고통, 예수님의 부재입니다.
23절 ‘무리를 보내신 후에 기도하러 따로 산에 올라가시니라 저물매 거기 혼자 계시더니’
예수님 없는 제자들끼리 배를 타고 가다가 고난을 맞습니다.
오늘 우리가 희망할 수 있는 것은 예수님이라는 존재입니다.
하나님께서 함께하신다는 믿음으로 살아갑니다.
그런데 제자들에게 기적 그 자체인 예수님이 함께 계시지 않는 현 상황은 큰 두려움이었을 것입니다.
그 다음 고통은 영적인 혼란입니다.
풍랑을 맞아서 끝나지 않는 절망적인 고통을 당하고 있는데, 그 원인 제공자가 바로 예수님입니다.
22절
‘예수께서 즉시 제자들을 제촉하사 자기가 무리를 보내는 동안에 배를 타고 앞서 건너편으로 가게 하시고’
배를 타게 하신 분이 예수님입니다.
순종하면 복이 된다고 하셨는데, 제자들의 마음에 얼마나 큰 갈등, 혼란이 있었겠습니까?
바로 직전 그 큰 기적의 현장. 꿈같던 그 현장을 황급히 떠나게 하신 분이 예수님입니다.
큰 원망, 좌절이 있었을 것입니다.
게다가 예수님께서는 밤 사경이 되어서야 제자들에게 나타나십니다.
더군다나 마가복음을 보면
6장 48절
‘바람이 거스르므로 제자들이 힘겹게 노 젓는 것을 보시고’
예수님이 알고 계신 것입니다. 지켜보고 계셨던 것이예요.
죽을 고생을 하고 있는 제자들을 즉시 제촉해서 떠나게 하셨다면 즉시 구해주셔야 할텐데 보고 계셨던 것입니다.
여러분 이 본문이 먼 옛날 이야기입니까?
오늘 우리 이야기는 아닙니까?
눈물로 주님께 인생의 풍랑을 잠잠케 해달라고 부르짖어도 상황은 잘 안바뀝니다.
때로는 외면하시는 것 같습니다.
어떻게 해석해야 합니까? 하루가 죽을 것 같은데 밤사경이 될 때까지 나타나지 않으실 때가 참 많습니다.
이런 답답한 마음에 계신 성도님들이 계시다면 본문에 문제제기를 보며 답을 함께 찾기를 소원합니다.
제자들과 같은 상황이 우리의 상황 같다면,
첫째, 예수님 뜻과 의도를 파악하는 힘 기르기.
22절
‘예수께서 즉시 제자들을 제촉하사 자기가 무리를 보내는 동안에 배를 타고 앞서 건너편으로 가게 하시고’
말씀을 잘 묵상해보면,
고난과 고생이 순종에 따른 것일 수 있습니다. 예수님 때문일 수 있습니다.
그런데 더 깊이 생각해보면, 시종일관 예수님은 의도적으로 어떤 일을 진행해 나가고 계십니다.
생각을 달리해서 창조주께서 상황을 이렇게 몰고 가셨다면, 분명 뜻이 있을 것이라는 확신에까지 생각이 이르게 됩니다.
결코 죽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고생하는 것을 보고 계셨다면 우리 상황을 알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나 몰라라 하고 계신 것이 아니라 알고 계셨다는 반증입니다.
제자들 안 죽었습니다. 나타났습니다.
이렇게 일하시는 하나님 법칙이 우리에게도 적용이 됩니다.
우리 계산과 우리 방식으로는 너무 힘들고 어려울지 모르겠지만, 죽지 않습니다. 망하지 않습니다.
왜요?
하나님 의도하시는 일 가운데 발생하는 모든 사건이기 때문입니다.
밤 사경의 의미도 마찬가지입니다.
기왕 구해주실 것 고생 없이 구해주시면 좋았을 것인데, 라는 생각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어부로서 잔뼈가 굵은 제자들이 풍랑을 보고 콧방귀나 뀌었을까요?
우리 실력, 경험으로는 잠재울 수 없는 풍랑임을 자각하는 시간. 바로 밤 사경입니다.
자신의 노력이나 능력으로는 이 문제해결이 불가능하다 선포하는 영적 밤 사경.
내가 의지하는 실력, 학력, 명예, 사회적 위치로는 할 수 없고,
하나님이 필요하고, 은혜가 필요하다는 선언을 하는 것이 밤 사경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밤 사경은 누구에게나 오지 않습니다.
할 수 있다면 영적 밤 사경을 당겨오는 여러분 중심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이사야 55장 8~9
‘이는 내 생각이 너희의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의 길과 다름이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이는 하늘이 땅보다 높은 같이 내 길은 너희의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의 생각보다 높음이니라’
우리의 낮음이 하나님의 높으심으로 우리의 작음이 하나님의 크심으로 나타나 지는 인생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둘째, 예수님 부재는 오해입니다.
23~24절을 보면 겉으로는 예수님께서 부재하신 것 같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언덕위에서 제자들 상황을 파악하고 계셨습니다.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예수님께서는 기도하고 계셨다는 것입니다.
갓난 아기의 시선은 고개가 잘 안돌아가서 부모의 존재가 자신의 시선에서 벗어나면 불안해합니다.
그런데 점차 성장하며 시선이 넓어지면, 시선의 범위에 부모가 없더라도 부모의 존재를 인식합니다.
신앙이 그렇지 않습니까?
예수님께서도 부활하시고, 승천하시며 자신의 부재에 대하여 분명히 불안해할 인생을 위해 조치를 해주셨는데,
첫째는 성령님을 보내셨습니다. 그래서 우리 인생에 불안이 찾아올 때에 성령님을 의지해야 합니다.
마태복음 28장 20절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놀라운 약속을 하셨습니다. 이 약속이 우리 인생들에게 잊혀지지 않도록 성령님을 보내주십니다.
요한복음 14장 16절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리니 그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그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그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그를 아나니 그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
성령 내주시하심이 왜 필요합니까?
요한복음 14장 26절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
예수님 말씀을 생각나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또 요한복음 15장 26절
‘내가 아버지께로부터 너희에게 보낼 보혜사 곧 아버지께로부터 나오시는 진리의 성령이 오실 때에 그가 나를 증언하실 것이요’
성령님은 많은 일을 행하시지만, 자기주장을 하시러 오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바로 예수그리스도를 드러내기 위해 오신다 성경이 증언합니다.
성령 받으세요. 강조를 많이 해왔던 한국교회입니다. 여러 이적들을 강조하면서 말입니다.
그런데 여러 방언은 해도
우리 삶이 예수님 십자가를 통과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면 그것은 거짓입니다.
성령님은 우리로 하여금 십자가를 통과하게 하십니다. 예수님에 대한 확신, 함께 하신다는 확신이요.
십자가 은혜를 의지할 수밖에 없는 우리임을 깨닫게 되는 것. 그것이 성령충만입니다.
두 번째 조치는 성경입니다.
요한복음 5장 39절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연구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언하는 것이니라’
성경을 읽어야 하는 이유, 마음이 평온해지고, 온유한 사람이 되기 위해 성경을 읽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결과 중 하나이고, 성경을 읽고 가까이 해야 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하여 증언한 책이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말씀을 가까이 함으로 예수님이 늘 함께하신다는 확신가운데 살아가시기를 기도합니다.
우리는 하루가 멀다하고 풍랑이 멈춰지지 않는 날들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어찌 버티시겠습니까? 겨울이 끝나기만을, 새벽이 오기만을 기다리시겠습니까?
새벽을 기다리는 인생에서 다윗과 같이 새벽을 깨우는 인생을 살아가시길 소원합니다.
예수님 함께 계시고, 예수님께서 의도하신 길이라면 동시에 절대로 잘못되거나 망하지 않는다는 확신으로 이겨내시기를 기도합니다.
그래서 빨리 밤사경을 맞이하여 주님께서 일하시는 복 된 인생을 살아가시길 주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